듣는 이 별로 없어도 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반박시 여러분 말이 다 맞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 감정론』

1. 집필 배경: 부흥의 현장에서 탄생한 신학적 정수

이 책은 1734-35년 노샘프턴(Northampton)에서 시작된 부흥과, 1740년대 뉴잉글랜드 전역을 휩쓴 제1차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집필되었다. 당시 에드워즈는 부흥 운동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섞여 있던 무분별한 열광주의(enthusiasm)를 비판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토요일에 세운 제단

한국의 대형교회에 토요 예배라는 유행의 바람이 분다. 모 교회 모 캠퍼스는 지금 토요일마다 네 차례 예배를 드린다. 오전 아홉 시부터 늦은 오후까지, 본당과 여러 층의 예배 공간이 순서대로 채워진다. 이것은 주일 예배를 하루 앞당겨 옮겨놓은 것이 아니다. 주일 체계는 그대로 유지한 채, 그 곁에 또 하나의 독립된 예배 체계를 통째로 세운 것이다. 한 주에 예배당 문이 두 번 열리고, 두 개의 회중이 나란히 존재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사실 그 말은 체념이었다

한국 교회 강단과 여러 성경공부 교재에서 에스더는 종종 “민족을 구한 담대한 믿음의 여전사"로 소개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대단한 믿음의 결심으로 읽히고,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4:14)는 자기계발 구호가 된다.

다른 불을 드리지 말라

레위기 9장과 10장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장이다. 9장에서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제사를 마쳤을 때,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제단의 제물을 불태우는 영광스러운 은혜의 사건이 일어났다. 온 백성이 그 영광 앞에 엎드려 환호했다.

박진영의 '삼위일체' 강의,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박진영 씨의 삼위일체 강의 영상을 접하고 영적인 불편함을 느끼신 성도님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무엇이 틀렸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강의는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수많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에, 오히려 삼위일체를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신비"라고 가르쳐온 정통 교회의 입장이 궁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도마복음, 왜 강단에서 다뤄지지 않는가

최근 몇몇 교회에서 정기 기도회나 특별 성경공부 프로그램의 이름으로 도마복음을 봉독하고 강해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정경보다 우월한 책으로 여기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예수님의 말씀을 낯선 자리에서 다시 듣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언뜻 신중해 보이는 이 접근이 왜 신학적으로 문제인지 답하려면, 먼저 도마복음이 실제로 무엇이고 학계와 교회사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 왔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