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id>https://murmuringjohn.github.io/</id><title>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title><subtitle>A minimal, responsive and feature-rich Jekyll theme for technical writing.</subtitle> <updated>2026-05-30T23:39:21+09:00</updated> <author> <name>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name> <uri>https://murmuringjohn.github.io/</uri> </author><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murmuringjohn.github.io/feed.xml"/><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s://murmuringjohn.github.io/"/> <generator uri="https://jekyllrb.com/" version="4.4.1">Jekyll</generator> <rights> © 2026 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 </rights> <icon>/assets/img/favicons/favicon.ico</icon> <logo>/assets/img/favicons/favicon-96x96.png</logo> <entry><title>거룩한 곳에 선 가증한 것</title><link href="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A%B1%B0%EB%A3%A9%ED%95%9C%EA%B3%B3%EC%97%90%EC%84%A0%EA%B0%80%EC%A6%9D%ED%95%9C%EA%B2%83/"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거룩한 곳에 선 가증한 것" /><published>2026-05-30T22:01:00+09:00</published> <updated>2026-05-30T22:01:00+09:00</updated> <id>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A%B1%B0%EB%A3%A9%ED%95%9C%EA%B3%B3%EC%97%90%EC%84%A0%EA%B0%80%EC%A6%9D%ED%95%9C%EA%B2%83/</id> <content type="text/html" src="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A%B1%B0%EB%A3%A9%ED%95%9C%EA%B3%B3%EC%97%90%EC%84%A0%EA%B0%80%EC%A6%9D%ED%95%9C%EA%B2%83/" /> <author> <name>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name> </author> <summary>2026년 4월 5일,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73개 교단, 7천여 명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는 화려했다. 그러나 그날 그 자리에서 벌어진 일은 그 화려함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활주일 예배의 강단에 올라 축사를 했다. 그리고 교회는 박수를 쳤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고질적 질병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강단은 누구의 것인가 먼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강단은 무엇을 위한 자리인가? 강단(pulpit)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다. 그것은 설교자가 인간의 지혜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단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summary> </entry> <entry><title>사퇴는 면피였나</title><link href="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C%82%AC%ED%87%B4%EB%8A%94%EB%A9%B4%ED%94%BC%EC%98%80%EB%82%98/"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사퇴는 면피였나" /><published>2026-05-30T22:00:00+09:00</published> <updated>2026-05-30T22:00:00+09:00</updated> <id>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C%82%AC%ED%87%B4%EB%8A%94%EB%A9%B4%ED%94%BC%EC%98%80%EB%82%98/</id> <content type="text/html" src="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C%82%AC%ED%87%B4%EB%8A%94%EB%A9%B4%ED%94%BC%EC%98%80%EB%82%98/" /> <author> <name>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name> </author> <summary>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부산 포도원교회 담임 김문훈 목사가 교역자 회의에서 부목사와 전도사들을 향해 “도끼로 대가리를 찍어버린다”, “네 아가리를 찢어 놓는다”는 등 차마 옮기기도 어려운 수위의 폭언과 욕설을 수년간 일삼아 왔다는 사실이 녹취 파일을 통해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더 참혹하다. 한 전직 교역자는 정신적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다고 했으며, 포도원교회를 떠난 전도사 3명 중 2명은 현재 사역 자체를 그만둔 상태라고 밝혔다. 여론이 들끓자 김 목사는 2026년 2월 26일 예장고신 부총회장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하루 만에 담임목사직까지 사임했다. 총회장 추대를 목전에 두고 일어난 사퇴였다. 한국 교회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리고 불과 3주 남짓 지난 3월 ...</summary> </entry> <entry><title>강단 아래의 권력 게임</title><link href="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A%B0%95%EB%8B%A8%EC%95%84%EB%9E%98%EC%9D%98%EA%B6%8C%EB%A0%A5%EA%B2%8C%EC%9E%84/"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강단 아래의 권력 게임" /><published>2026-05-30T21:50:00+09:00</published> <updated>2026-05-30T22:12:01+09:00</updated> <id>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A%B0%95%EB%8B%A8%EC%95%84%EB%9E%98%EC%9D%98%EA%B6%8C%EB%A0%A5%EA%B2%8C%EC%9E%84/</id> <content type="text/html" src="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A%B0%95%EB%8B%A8%EC%95%84%EB%9E%98%EC%9D%98%EA%B6%8C%EB%A0%A5%EA%B2%8C%EC%9E%84/" /> <author> <name>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name> </author> <summary>교회는 복음의 공동체이며, 십자가의 질서로 세워진 몸이다. 그러나 어떤 교회 안에서는 강단 위의 설교와 달리, 강단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질서가 작동한다. “누가 몇 년 차인가”로 서열을 나누고, 파벌을 형성하며, 새로 온 사역자를 길들이고, 심지어는 훗날 자신의 ‘성전’을 하나 차지할 것처럼 암묵적인 권력 투쟁을 벌이는 모습까지 나타난다면, 그것은 단순한 조직 갈등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본질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년차가 계급이 되는 순간 교회 안에서 경험과 연륜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계급이 되고,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암묵적인 특권과 발언권, 영향력을 독점하는 구조가 된다면, 교회는 이미 복음의 질서를 떠난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서열 다툼을 보시고 분명히 말씀하셨다....</summary> </entry> <entry><title>목사의 입과 리더십</title><link href="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B%AA%A9%EC%82%AC%EC%9D%98%EC%9E%85%EA%B3%BC%EB%A6%AC%EB%8D%94%EC%8B%AD/"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목사의 입과 리더십" /><published>2026-05-30T21:40:00+09:00</published> <updated>2026-05-30T21:40:00+09:00</updated> <id>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B%AA%A9%EC%82%AC%EC%9D%98%EC%9E%85%EA%B3%BC%EB%A6%AC%EB%8D%94%EC%8B%AD/</id> <content type="text/html" src="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B%AA%A9%EC%82%AC%EC%9D%98%EC%9E%85%EA%B3%BC%EB%A6%AC%EB%8D%94%EC%8B%AD/" /> <author> <name>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name> </author> <summary>최근 한국 교계가 또다시 시끄럽다. A 목사가 사역자들에게 심각한 언어폭력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과연 충격받을 일인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교계 곳곳에서는 이와 유사한, 아니 어떤 경우에는 그보다 더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다. B 목사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공개적으로 부목사들을 보험회사 영업사원 다루듯 전도 실적으로 줄 세우고, 실적이 부진한 이에게는 “목사 그만하고 택시나 몰아라”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해당 사역자의 가문과 혈통까지 들먹이며 “그 집안 유전자 자체가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반면 자신의 유전자는 탁월하다는 근거로 자기 아들이 대형교회 담임으로 청빙된 일을...</summary> </entry> <entry><title>숫자가 신이 될 때</title><link href="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C%88%AB%EC%9E%90%EA%B0%80%EC%8B%A0%EC%9D%B4%EB%90%A0%EB%95%8C/"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숫자가 신이 될 때" /><published>2026-05-30T21:00:00+09:00</published> <updated>2026-05-30T22:02:19+09:00</updated> <id>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C%88%AB%EC%9E%90%EA%B0%80%EC%8B%A0%EC%9D%B4%EB%90%A0%EB%95%8C/</id> <content type="text/html" src="https://murmuringjohn.github.io/posts/%EC%88%AB%EC%9E%90%EA%B0%80%EC%8B%A0%EC%9D%B4%EB%90%A0%EB%95%8C/" /> <author> <name>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name> </author> <summary>교회가 숫자를 중시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성경에도 회심자의 “수”가 언급되고(행 2:41), 복음이 확장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행 6:7). 문제는 숫자가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숫자가 신뢰의 기준이 되고, 숫자가 의로움의 증거가 되고, 숫자가 하나님의 승인처럼 취급될 때, 교회는 어느새 “복음 공동체”가 아니라 “동원 조직”으로 재정의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단지 ‘건강하지 못한 성장주의’가 아니라, 더 위험한 형태—곧 이단성(사이비적) 구조와 접속하는 경로를 보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이단성은 “교리 조항 몇 개”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통 용어를 쓰고, 정통 교리를 외워도, 조직이 사람을 통제·소모·기만하는 방식으로 굳어지면, 그 구조 자체가 이미 이단적 성격을 띨 수 ...</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