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 별로 없어도 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반박시 여러분 말이 다 맞습니다.

“애국=신앙”이라는 위험한 등식

요즘 일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애국심이 곧 신앙의 증거”라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보수가 곧 올바른 신앙이고,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식의 등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을 왜곡하는 위험한 길이다.

무대 앞의 청년들, 광장의 청년들

지난 목요일, 피아워십과 기프티드가 심형진, 마이크로닷과 함께한 찬양집회에 4천 명이 넘는 인원이 몰렸다고 한다. 수용 한계는 3천 명. 결국 천 명 넘는 사람들이 예배당 문턱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아직 정식으로 기사화된 바는 없지만,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되는 이야기다.

조직은 배척하고 강단은 무방비

지금까지 여러 편에 걸쳐 WCC·WEA에 대한 한국 교회의 무조건적 반대 정서가 어떤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정서가 실제로 어떤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했다. 이번 마지막 편에서는 방향을 조금 바꿔,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또다른 역설을 짚으려 한다.

낙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난 편에서 “WCC/WEA에 속했으니 이단"이라는 낙인이 실제 내용을 모른 채 던져진다는 것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낙인이 실제로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 교회 성도들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왜 신학적 근거를 따져보지 않고도 이 정도로 강한 확신을 갖게 되는지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추적한다.

WCC에 속했으니 이단인가

1편에서는 무조건적 분리주의가 진리보다 진영 순수성 과시에 골몰하는 태도라는 것을, 2편에서는 정죄는 값싸지만 실제 결단(떠남이든 머묾이든)은 비싸다는 것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두 논지를 WCC(세계교회협의회)·WEA(세계복음주의연맹)라는 구체적 대상에 대입해본다.

벗은 채 광야로 나가는 것과 손가락질하는 것은 다르다

지난 편에서는 무조건적 분리주의가 결국 진리에 대한 관심을 잃고 “너도 검고 나도 검다"는 상호 정죄로 끝난다는 점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문제의 다른 얼굴을 다루려 한다. 즉,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자기 자리에서 대가를 치르며 결단하고 광야에 홀로 서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