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 별로 없어도 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반박시 여러분 말이 다 맞습니다.

너도 검고 나도 검다

최근 올림픽공원 예배를 둘러싼 이단 논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이단성을 지적받은 몇몇 단체들이 침묵하거나 반성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들을 비판하는 기성 교단을 향해 “너희야말로 WCC(세계교회협의회)·WEA(세계복음주의연맹)에 속해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가 더 이단 아니냐"는 식으로 되받아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반박이 신학적 논증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수사(修辭)라는 점이다. “네가 나를 이단이라 부르니, 나도 너를 이단이라 부르겠다"는 이 구도는 결국 누가 진리 편에 서 있는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그럴듯하게 상대를 깎아내리는가를 겨루는 소모전으로 끝난다.

상처받아도, 왜 교회여야 하는가

1. “이 교회는 나한테 안 맞는 것 같아요”

요즘 청년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교회에서 상처받았어요.” “내가 이 공동체에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여기가 나한테 맞는 교회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결론은 대체로 비슷하다. 로컬 처치(local church, 지역교회)의 예배와 회원 됨은 뒤로하고, 자기 취향에 맞는 찬양팀이나 선교단체, 혹은 마음에 드는 설교자의 온라인 콘텐츠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헌금도 거기로, 봉사도 거기로, 소속감도 거기서 찾는다.

적은 밖에 있지 않다

올림픽공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탄핵 정국 속에서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다양하다. 신자도 있고 비신자도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의 언어로 같은 광장에 서 있다. 참정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탄이 아니다

한국 교회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오래된 장르가 하나 있다. 유명 CCM 가수의 앨범 커버를 확대한 사진, 특정 선교 단체의 로고를 캡처한 이미지, 대형 교회 예배당 천장의 문양을 찍은 사진. 그 아래 달리는 댓글은 한결같다. “전사안입니다”, “프리메이슨 상징입니다”, “이 찬양 틀면 안 됩니다.”

나팔을 불면 하늘이 열리는가

요즘 올림픽공원 잔디밭에 나가면 낯선 소리가 들린다. 양의 뿔을 가공해 만든 악기, 쇼파르(שׁוֹפָר, shofar)다. 찬양 집회 한쪽에서 누군가 그것을 꺼내 힘껏 불어댄다. 주변 사람들은 눈을 감고 손을 들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린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이렇다. “희년을 선포하는 나팔이요. 저걸 불면 매인 것이 풀리고 영적 돌파가 일어나요.”

광장의 찬양이 부흥이 되는 날을 기다리며

올림픽공원에서 함성이 이어지고 있다. 2030 청년들이 전면에 섰고, 새벽 두 시에도 대중교통이 끊긴 자리를 지켰다. 참정권이 훼손당했다는 정치적 좌절감이 이들을 움직인 동력이었다. 선관위의 행정 부실은 실제로 있었고, 공정성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분노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부 한국 교회 목사들이 이 집회를, 그 한 복판의 찬양과 기도를 가리키며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아주사 부흥이다.” “애즈베리가 한국에 왔다.” 나는 이 발언들을 듣고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신학적 무지인가, 아니면 현장 감동에 압도당한 판단력 상실인가. 어느 쪽이든, 이것은 교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