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배척하고 강단은 무방비
지금까지 여러 편에 걸쳐 WCC·WEA에 대한 한국 교회의 무조건적 반대 정서가 어떤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정서가 실제로 어떤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했다. 이번 마지막 편에서는 방향을 조금 바꿔,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또다른 역설을 짚으려 한다.
지금까지 여러 편에 걸쳐 WCC·WEA에 대한 한국 교회의 무조건적 반대 정서가 어떤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정서가 실제로 어떤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했다. 이번 마지막 편에서는 방향을 조금 바꿔,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또다른 역설을 짚으려 한다.
지난 편에서 “WCC/WEA에 속했으니 이단"이라는 낙인이 실제 내용을 모른 채 던져진다는 것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낙인이 실제로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 교회 성도들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왜 신학적 근거를 따져보지 않고도 이 정도로 강한 확신을 갖게 되는지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추적한다.
1편에서는 무조건적 분리주의가 진리보다 진영 순수성 과시에 골몰하는 태도라는 것을, 2편에서는 정죄는 값싸지만 실제 결단(떠남이든 머묾이든)은 비싸다는 것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두 논지를 WCC(세계교회협의회)·WEA(세계복음주의연맹)라는 구체적 대상에 대입해본다.
지난 편에서는 무조건적 분리주의가 결국 진리에 대한 관심을 잃고 “너도 검고 나도 검다"는 상호 정죄로 끝난다는 점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문제의 다른 얼굴을 다루려 한다. 즉,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자기 자리에서 대가를 치르며 결단하고 광야에 홀로 서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는 것이다.
최근 올림픽공원 예배를 둘러싼 이단 논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이단성을 지적받은 몇몇 단체들이 침묵하거나 반성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들을 비판하는 기성 교단을 향해 “너희야말로 WCC(세계교회협의회)·WEA(세계복음주의연맹)에 속해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가 더 이단 아니냐"는 식으로 되받아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반박이 신학적 논증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수사(修辭)라는 점이다. “네가 나를 이단이라 부르니, 나도 너를 이단이라 부르겠다"는 이 구도는 결국 누가 진리 편에 서 있는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그럴듯하게 상대를 깎아내리는가를 겨루는 소모전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