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 별로 없어도 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반박시 여러분 말이 다 맞습니다.

본질을 잃어가는 총회, 우리는 누구를 위한 법을 만드는가

지난 2026년 6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는 남침례교(SBC) 정기총회와 미주남침례회 한인교회총회(CKSBCA)가 같은 한 주, 같은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한인총회는 SBC 본회의 참여를 독려하겠다며 일정까지 화요일 개막으로 조정했다. 형제 교단으로서의 연대를 그렇게 표현한 셈이다.

복음보다 징조를 앞세우다

최근 유튜브 채널 ‘FTNER’를 운영하는 김영현 씨와 그가 주도하는 단체가 행하는 올림픽 공원 내의 기도회가 기독교 청년들 사이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청년이 그의 메시지에 열광하며 부르짖고 있으나, 역사적 기독교가 검증해 온 신학적 잣대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복음의 왜곡과 교리적 불균형이 발견된다.

본문이 부재한 강단, 복음이 거세된 목양

종교 개혁가들은 교회의 흥망성쇠가 ‘강단의 신실함’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게 선포될 때 교회가 살고, 그 말씀이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과 타협할 때 교회의 영적 호흡은 멈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강단을 돌아보면, 성경의 엄위함은 사라지고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려는 세속적 만담과 심리학적 위로, 그리고 기복주의적 처세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강단은 쇼 무대가 아니다

한국 교회 안에 이상한 풍경이 굳어지고 있다.

어느 교회의 특별 집회, 어느 기도회, 어느 연합행사의 강사 명단을 들여다보면 그 스펙트럼이 놀랍도록 넓다. 신사도운동 성향의 설교자가 있는가 하면, 정통 복음과는 거리가 먼 번영신학 부흥사가 있고, 신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간증자가 있으며, 심지어 개신교 울타리 밖의 종교인까지 강단에 서는 일이 낯설지 않다. 이 다양한 이들을 한자리에 묶는 공통 기준이 딱 하나다. 유명하다. 재밌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

눈물로 부르짖는 자리에 교회는 없었다

며칠째 올림픽공원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 중심에는 2030 청년들이 있다. 누가 모으지 않았고, 누가 지휘하지 않았다.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황당함, 투표함이 옮겨지고 보관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꼈던 불안과 의혹, 그 가운데서 일어난 폭력과 부정함—이 모든 것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누군가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외침에 또 다른 누군가가 응답했다. 주동자도 없이, 지휘부도 없이, 그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며칠을 이어가고 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 말씀에서 멀어지는 길

지난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올랜도에서 열린 2026년 남침례교(SBC) 연례총회는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변곡점이 되었다. 멀리서 이 소식을 지켜보며, 나는 한국 교회, 특히 한국 침례교회가 가고 있는 방향과 정반대의 흐름을 보았다. 오늘은 그 풍경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