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 별로 없어도 광야에서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반박시 여러분 말이 다 맞습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없느냐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태복음 16:3)

교회 밖은 지금 무엇을 감지하고 있는가

2026년 5월, 한국 사회는 분명하게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평소라면 침묵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사저에 머물던 전직 대통령들이 부산으로, 원주로 나선다. 이 사회의 시민들은 지금 이 시간이 평범한 시간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 감각이 옳든 그르든, 정확하든 과장되었든, 사람들은 지금 뭔가가 결정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강단 아래의 권력 게임

교회는 복음의 공동체이며, 십자가의 질서로 세워진 몸이다. 그러나 어떤 교회 안에서는 강단 위의 설교와 달리, 강단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질서가 작동한다. “누가 몇 년 차인가”로 서열을 나누고, 파벌을 형성하며, 새로 온 사역자를 길들이고, 심지어는 훗날 자신의 ‘성전’을 하나 차지할 것처럼 암묵적인 권력 투쟁을 벌이는 모습까지 나타난다면, 그것은 단순한 조직 갈등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본질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숫자가 신이 될 때

교회가 숫자를 중시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성경에도 회심자의 “수”가 언급되고(행 2:41), 복음이 확장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행 6:7). 문제는 숫자가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숫자가 신뢰의 기준이 되고, 숫자가 의로움의 증거가 되고, 숫자가 하나님의 승인처럼 취급될 때, 교회는 어느새 “복음 공동체”가 아니라 “동원 조직”으로 재정의된다.

두 교단의 선택, 두 교단의 미래

1993년 3월, 미국 루이빌. 서던 침례신학교(SBTS) 이사회는 33세의 젊은 청년을 제9대 총장으로 선출했다. 알버트 몰러. 그는 취임 직후 교수진 전원에게 신앙고백서 서명을 요구했다. 거부하는 자는 떠나야 했다. 700명의 학생이 줄었다. 교수들의 불신임 투표가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미디어 헬기가 잔디밭 시위 현장을 날았다. 몰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 한 질문에 집중했다. “이 신학교는 누구의 것인가? 잔디밭의 시위대의 것인가, 교회의 것인가?”

침신대 위기, 재정 문제가 아니다

2026년 5월 7일,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 피영민은 재학생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신학과를 제외한 전 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은 정중했고, 약속도 담겨 있었다. 졸업까지 교과과정을 보장하겠다, 교수진을 유지하겠다, 국가장학금을 회복하겠다.

누가 사단인가

설교 제목과 강단의 풍경

최근 한국 교회의 어느 강단에서 “교회 안에 있는 사단"이라는 제목의 설교가 전해졌다. 그 설교가 전해진 같은 주일, 같은 강단 위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고 적지 않은 성도들이 깊은 상처를 호소하고 있다. 어떤 이는 사역에서 물러났고, 어떤 이는 교회를 떠났다. 외부에서 어렵게 청빙된 찬양 사역자 부부가 사임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