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WCC·WEA 도매금 반대의 실제 경로

지난 편에서 “WCC/WEA에 속했으니 이단"이라는 낙인이 실제 내용을 모른 채 던져진다는 것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낙인이 실제로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 교회 성도들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왜 신학적 근거를 따져보지 않고도 이 정도로 강한 확신을 갖게 되는지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추적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이 낙인은 ①1959년 분열을 통해 제도적으로 각인되었고, ②2010년대 한기총의 정치적 재동원을 거쳤으며, ③최근에는 신학적 논증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 정체성과 결합해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교단의 심사 절차를 우회한 채 신자 개개인에게 직접 전달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 세 번째 단계가 “일반 성도들이 왜 근거를 따지지 않고도 강한 확신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답이다.

1959년 분열 — WCC와 NAE(WEA)가 처음부터 함께 묶였다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는 WCC 가입 문제로 통합(찬성)·합동(반대) 분열을 겪었다(위키백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코람데오닷컴, “1959년 합동·통합 분열 과정과 요인”, 2009.9.3). 이 시기 한국 장로교 안의 반(反)에큐메니컬 정서에는 미국 근본주의 진영(WCC에 대항해 국제기독교협의회·ICCC를 세운 칼 매킨타이어 계열)의 영향도 일부 작용했다는 것이 여러 교계 자료에서 언급된다(뉴스앤조이, “20세기 세계 전투적 기독교 근본주의의 대명사”, 2018.8.14). 다만 이 영향의 구체적 비중은 자료마다 평가가 다르므로, 이 칼럼에서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언급된다” 정도로만 다루고 넘어간다.

이 시리즈에서 정작 중요한 발견은 따로 있다. 1959년 분열 당시 결의 자체가 WCC뿐 아니라 NAE(오늘날 WEA의 모체 조직)와의 교류까지 함께 금지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2025년 예장합동 증경총회장단(전직 총회장 모임)이 WEA 서울총회를 반대하며 직접 인용한 근거이기도 하다: “본 교단 총회는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WEA(NAE)와 교류를 금하는 결의를 하였고, 이 결의는 지금도 유효하다”(기독교종합신문, “증경총회장단회, 논란거리인 WEA에 대한 단호한 입장 발표해”, 2025.7.30). 즉 “WCC와 WEA를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정서"는 2013년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1959년 분열의 원 결의문 자체에 이미 새겨져 있었다.

같은 교단 안에서도 판단은 갈렸다

그런데 정작 예장합동 교단 자체의 공식 총회는 이후 여러 차례 WEA와의 교류를 직접 심사하고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 제104회 총회는 신학부 보고를 통해 “WEA와의 교류금지 건에 대해 WEA가 우리 총회가 지켜오고 추구하는 신학적 입장과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어 교류단절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의했고, 2021년 제106회 총회 역시 교류 단절 헌의안을 두고 “WEA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들어날 때까지 결의를 유보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것"을 가결했다(합동투데이,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총회 10월 27일~31일 개최”, 2025.2.25).

같은 교단 안에서도 공식 총회(신학부의 심사를 거친 결의)와 일부 원로·강경파 그룹(증경총회장단)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 “예장합동은 WEA를 반대한다"는 식의 단순화는 이미 그 교단 내부의 실제 의사결정 과정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2014년 WEA 서울총회 무산 — 실제 원인은 무엇이었나

한기총은 2009년 WEA 정회원으로 가입했고, 2014년 10월 서울에서 WEA 총회를 열기로 WEA 본부 승인까지 받아 준비하고 있었다(weaseoulga.org 연혁 정리). 그런데 2014년 2월 11일 WEA는 총회를 잠정 연기한다고 발표했다(아이굿뉴스, “WEA총회 한국 개최 결국 ‘무산’”, 2014.2.12). 공식 사유는 “복음주의 공동체 간 내부 분열"이었지만, 후속 취재에 따르면 실제로는 한기총 자체의 내분 — 이단성 시비가 있는 인사(다락방 류광수, 박윤식 목사 등)를 재영입하려던 논란 — 에 대해 WEA 국제이사회와 아시아권 회원 교단들이 불신을 표한 것이 핵심 원인이었다(위 기사). 심지어 2012년 10월에는 당시 WEA 회장이던 한국인 김상복 목사를 포함한 국내 복음주의 지도자 5인이 한기총의 파행을 우려하며 “다른 나라에서 개최하라"는 의견을 WEA에 전달했고, 이 부담은 김상복 목사 본인의 WEA 의장직 사임으로 이어졌다(위 기사). 즉 2014년 무산의 원인은 “WEA가 WCC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한기총 스스로의 내부 문제 때문에 국제 복음주의 네트워크 안에서 신뢰를 잃은 것이었다.

2025년 재현, 그리고 전광훈 체제 이후의 질적 변화

2025년 WEA 서울총회(10월 27일31일)가 실제로 성사되자 다시 강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기독일보, “[사설] WEA 서울총회, 복음 확장의 전기 마련되길”, 2025.10.29; 크리스채너티투데이 코리아, “세계복음주의연맹의 한국 총회 발표 논란”, 2025.1.27). 그런데 이번 반대 운동은 201213년 한기총(홍재철·길자연 체제) 캠페인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뚜렷한 질적 변화를 보인다.

첫째, 극단적 수사(修辭)는 사실 전광훈 시대에 새로 생긴 게 아니라 이미 2013년 부산 총회 이전부터 있었다. 한기총 산하 “WCC반대대책위원회”(위원장 홍재철 목사)는 2010년 5월 31일 공식적으로 WCC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했다(크리스천 노컷뉴스, “WCC반대 대책위, ‘WCC, 적그리스도’로 규정”, 2010.5.31). 흥미로운 건 그로부터 3년 뒤인 2013년 1월, 같은 한기총이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손잡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자 “WCC를 사탄에 비유하면서 강하게 비판해놓고 이제 와서 손잡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는 것이다(오마이뉴스, “‘적반하장’ 한기총, WCC 위해 손 잡을 땐 언제고…”, 2013.3.15). 즉 “적그리스도·사탄"이라는 극단적 표현 자체는 전광훈 등장(2019년) 훨씬 이전부터 한기총 지도부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돼 왔다. 전광훈 체제에서 달라진 것은 표현의 극단성이 아니라, 아래에서 살펴볼 다른 지점들이다.

둘째, “이단 감별"을 자처하면서 정작 이단 시비 인물을 영입했다. 전광훈은 대표회장 취임 직후인 2019년 3월, 예장합동을 비롯한 9개 교단이 이단성을 결의한 변승우 목사(사랑하는교회)를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재조사도 없이 “이단성 없음"으로 뒤집었고, 4월 9일에는 그를 공동회장으로 임명했다(기독신문, “한기총 졸속 검증, ‘이단성 논란’ 변승우 영입”, 2019.3.11; 뉴스파워, “한기총, 변승우 공동회장으로 임명”, 2019.4.9). 예장고신 이단대책위원회도 이 사실을 그대로 확인했고(교회와신앙, “고신, 전광훈 1년 유보, 한기총 이단옹호단체 규정”, 2020.10.21), 팩트체크 전문 매체 뉴스톱 역시 같은 사실관계를 별도로 확인했다(뉴스톱, “[팩트체크] 전광훈 목사 이단판정 받았다?”, 2023.3.17). 이 영입 직후 변 목사 측에서 약 5억 원이 전광훈 측 계좌로 송금된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배임수재 혐의로 수사한 사실도 여러 매체에 보도됐으나(위키백과 “전광훈” 항목), 이는 아직 수사·의혹 단계이지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이 사건으로 CCC(한국대학생선교회) 등 여러 단체·교단이 한기총을 탈퇴했다(교회와신앙, 위 기사).

셋째, 그 자신도 여러 교단으로부터 반복적으로 이단성 심의를 받아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2019년 6월 10일 전광훈을 “거짓 선지자"로 규정하는 성명을 냈다(위키백과 “전광훈” 항목, NCCK 성명 인용). 예장통합은 2021년 서울노회 등 3개 노회의 심의 요청에 “신학적 오류나 이단성 차원이라 보기는 힘들다"며 조사를 보류했고(뉴스앤조이, “예장통합 이대위, 전광훈 이단성 연구 보류”, 2021.3.3), 2022년 총회에서도 같은 결론을 유지했다(평화나무, “[카이로스] 지지부진한 전광훈 이단조사 개신교 교단들 왜 이러나?”, 2025.9.26에서 경과 재정리). 그런데 내부 비판이 계속되자 예장통합은 2025년 9월 25일 제110회 총회에서 순천남노회·순천노회·여수노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광훈에 대한 이단성 조사를 새로 착수하기로 결의했고, 그 결과는 2026년 111회 총회에 보고될 예정이다(노컷뉴스, “예장 통합, 전광훈 목사 이단성 조사…통일교 ‘이단·사이비’ 재결의”, 2025.9.25). 즉 공식 기구가 그를 이단으로 최종 규정한 적은 아직 없지만, 이 논란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인 사안이다.

넷째, 반공주의·정치 이념과 결합하는 양상이 여러 매체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전광훈은 “기독교입국론"을 주장하며 뉴라이트 성향의 정치 운동을 이끌었고, 2021년에는 직접 정당(국민혁명당)을 창당해 대표를 맡았다(위키백과 “전광훈” 항목, 경향신문·한겨레·MBC뉴스 등 복수 기사를 각주로 인용). 태극기 집회를 코로나19 방역 국면에서도 강행한 것에 대해서는 진보(한겨레)·중도(MBC뉴스)·보수(노컷뉴스) 매체 모두 사실관계 자체는 동일하게 보도했다(한겨레, “이 와중에 밀어붙인 태극기집회…코로나19 야외에선 안전 궤변”, 2020.2.22; MBC뉴스, “전광훈 목사 구속…‘공직선거법 위반’”, 2020.2.25). 즉 신학적 논쟁과 정치 운동이 한 인물 안에서 밀접히 결합해 있다는 것은 특정 진영 매체만의 주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의 매체들이 공통으로 확인하는 사실이다.

결정적 증거: 지지자들을 실제로 조사한 학술 연구

여기서 “왜 일반 성도들이 신학적 근거도 따지지 않고 강한 확신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실증적 답이 하나 있다. 학술논문 “전광훈의 개신교 지지자들”(한국연구재단 등재지 게재, KCI 수록)은 개신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다항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실시했는데, 전광훈 지지 여부를 유의미하게 설명하는 변수는 “정치 성향"이었고, 신학적 근본주의 성향은 유의미한 변수가 아니었다(KCI, “전광훈의 개신교 지지자들”). 논문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전광훈 현상은 종교적 양태와 태도가 아닌 정치적 이념이 이끌고 있으며, 전광훈의 지지자들은 교회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오늘날 WCC·WEA 반대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 “신학적 확신"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 정체성의 표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표시는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교단의 신학적 심사 절차를 완전히 우회한 채, 시청자 수만 명 단위로 실시간 확산된다(시사IN, “극우 유튜브 알고리즘 한 달 동안 빠져보니”, 2025.1.21).

정리: 낙인이 만들어지는 구조

  1. 원 결의문 자체의 도매금 구조: 1959년 결의는 처음부터 WCC와 NAE(WEA)를 함께 겨냥했다(기독교종합신문, 2025.7.30에 인용된 1959년 결의).
  2. 공식 기관과 강경 소수의 괴리: 같은 교단의 공식 총회(2019, 2021)는 WEA와 교류를 유지하기로 두 차례 결의했지만, 원로·강경파 그룹은 계속 반대해왔다(합동투데이, 2025.2.25).
  3. 정치적 재동원과 그 실패: 2014년 무산은 신학적 이유가 아니라 한기총 자체의 내분 때문이었다(아이굿뉴스, 2014.2.12).
  4. 극단적 수사의 연속성과 정치 이념과의 결합: “적그리스도·사탄” 같은 극단적 언어는 사실 2010년부터 이미 있었고, 여기에 전광훈 체제 이후에는 정치 운동과의 밀접한 결합, 그리고 학술적으로 확인된 “정치 성향이 신학적 입장보다 더 강한 예측 변수"라는 특징이 더해졌다(크리스천 노컷뉴스, 2010.5.31; 한겨레; MBC뉴스; KCI 논문).
  5. 매체 구조의 변화: 유튜브는 이 모든 것을 교단 심사 절차 밖에서 신자 개개인에게 직접, 반복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었다(시사IN, 2025.1.21).

나가며

이것이 1편에서 말한 무조건적 분리주의의 실제 얼굴이다. 낙인은 한 사람의 심리적 조작이라기보다 구조적 현상에 가깝다. 신학적 소재(1959년의 WCC 반대)가 정치적 재동원(2010년대 한기총 캠페인)을 거쳐, 오늘날에는 정치 진영 정체성과 결합한 채 신학 교육이나 교단의 심사 절차를 우회하는 매체를 통해 직접 신자에게 전달된다. 성도들이 이 역사를 모른 채 “WCC나 WEA나 다 똑같은 이단 단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성도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이 구조가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1편에서 다룬 신학적 중증도 분류(theological triage), 2편·3편에서 다룬 “실제 대가를 치른 결단"이라는 기준으로 돌아가 보면, 이 역사 전체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목소리는 손가락질을 반복한 쪽이 아니라, 신학부를 통해 실제로 심사하고 근거를 밝히며 판단한 쪽이었다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