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를 위한 반대를 넘어

에큐메니칼 논쟁 속에서 잃어버린 진리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상황은 그야말로 깊은 혼돈의 시대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희미해졌고, 진리에 대한 거룩한 열망과 관심마저 식어진지 오래다. 최근 교계 안팎에서 벌어지는 WCC, WEA, 그리고 에큐메니칼(Ecumenical) 평화 대회에 대한 맹렬한 반대 시위와 논쟁들은 이러한 영적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는 분명 비성경적인 혼합주의와 포용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강단과 교회가 철저한 성경적, 신학적 성찰 없이 특정 타이틀이나 단체의 이름만을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

타이틀 반대의 공허함과 신학적 빈곤

현재 교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반대 운동의 가장 큰 맹점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판단 준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어떤 구속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들의 기독론과 구원론이 어떻게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훼손하는지에 대한 깊은 신학적 반성 없이, 오직 ‘종교 통합’이라는 단편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핏대를 세우고 있다.

이러한 가볍고 얇은 신학과 신앙의 기초는 필연적으로 교회의 약화와 몰락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된다. 바른 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맹목적인 반대는, 정작 우리가 무엇을 고수해야 하고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에 대한 후속 조치를 전혀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굳건한 뼈대 없이 명목상의 단체나 지도자만을 배제하는 데 몰두할 때, 교회는 생명력을 잃고 화석화될 뿐이다.

분별없는 연대라는 치명적 비극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학적 기준이 무너진 자리에 ‘어리석은 연대’가 독버섯처럼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참된 진리이고 수호해야 할 성경적 가치인지 모르기 때문에, 단지 WCC나 에큐메니칼을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우리 편’이라 규정하고 동조하는 참극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과 시위 현장을 보라.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들이나 잘못된 행습을 가진 집단들이 오히려 더 열을 내며 에큐메니칼 반대 시위의 선봉에 서고 있다. 성경적 분별력이 얕은 성도들은 그들의 구호에 홀려 거짓된 무리에게 끌려가고 있다. 이는 거짓 교사들이 보수적 신앙의 탈을 쓰고 양 떼를 노략질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며, 교회의 순수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다.

에베소서 4장 13-14절은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해 엄중히 경고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건전한 교리)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결국 거짓 교훈의 풍조에 이리저리 밀려 요동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수호해야 할 교회의 순수성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고수해야 하는가? 참된 교회는 혈통이나 제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의 진리를 믿고 거듭난 신자들의 공동체로 세워진다. 이를 위해 강단에서는 타협 없는 순수한 복음이 선포되어야 하며, 회심한 신자들에게만 베풀어지는 성경적인 ‘침례’와 ‘주의 만찬’이 바르게 시행되어야 하고, 말씀에 근거한 권징이 살아있어야 한다.

비진리를 배척하는 것은 마땅하나, 동시에 진리를 깊이 알고 배우며 그 위에 신앙과 신학을 세우는 뼈대 세우기 작업 없이 한국 기독교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단순히 에큐메니칼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라는 구속사적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 교회가 맞이한 가장 치명적인 위기이자, 참된 진리의 척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며 기회다. 강단이 깨어나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함정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성경적 기준과 교리적 균형을 회복하여 양 떼를 진리의 반석 위에 굳게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