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은 채 광야로 나가는 것과 손가락질하는 것은 다르다
정죄와 결단 사이
지난 편에서는 무조건적 분리주의가 결국 진리에 대한 관심을 잃고 “너도 검고 나도 검다"는 상호 정죄로 끝난다는 점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문제의 다른 얼굴을 다루려 한다. 즉,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자기 자리에서 대가를 치르며 결단하고 광야에 홀로 서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는 것이다.
미국 내 한인 교회들이 최근 10여 년간 PCUSA(미국장로교)와 PCA(미국장로교, 보수) 등 교단 안에서 겪은 일들을 실제 자료로 살펴보면, 이 차이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드러난다. “잘못된 교단이니 나오라"는 말은 쉽다. 그러나 재산이 교단에 묶여 있고, 30년 넘게 함께 사역해 온 관계망이 있고,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생계와 교인들의 신앙 여정이 걸려 있을 때, 그 결단은 결코 “선언 한 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PCUSA의 실제 상황: 신학적 전환과 그 여파
PCUSA는 2010년 총회에서 “혼인 관계 안의 신실함, 독신의 순결"이라는 안수 기준을 삭제하는 수정헌법 10-A를 통과시켰고, 2011년 5월 노회 과반수 비준을 거쳐 발효되었다. 이어 2014년 총회는 목회자가 동성 결혼식을 집례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2015년에는 혼인의 정의 자체를 “전통적으로 남녀 간"이라는 문구를 포함한 “두 사람 간의 헌신"으로 바꾸는 수정헌법 14-F가 노회 3분의 2 이상의 비준을 통과했다. 이 결정 직후 수백 개 교회가 탈퇴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보수적 교단인 ECO(“복음주의 장로교 언약회”, 2012년 창립)와 EPC(복음주의장로교회)로의 이적이 이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PCUSA 헌법(Book of Order) G-4.0203 조항, 이른바 “신탁 조항(Trust Clause)“은 모든 지역 교회의 재산이 “PCUSA의 유익을 위해 신탁된 것"이라고 규정한다. 즉 개별 교회가 아무리 압도적 다수로 탈퇴를 결의해도, 노회의 승인 없이는 교회 건물과 부지를 가지고 나갈 수 없다. 그리고 2012년 PCUSA 최고 사법기구(GAPJC)는 노회가 재산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fiduciary duty)“를 다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탈퇴하려는 교회에 재산 가치를 근거로 한 “출구 비용(exit fee)“을 부과하는 관행이 사실상 공식화되었다.
실제 액수를 보면 이 문제의 무게가 드러난다.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장로교회는 2014년 노회 탈퇴 승인을 받으며 890만 달러($8,890,000)를 지불했다. 미네소타 호프장로교회는 120만 달러를 지불하고 캠퍼스 하나를 통째로 넘겨야 했다. 버지니아 로어노크제일장로교회는 80만 달러를 10년에 걸쳐 분납하는 조건으로 겨우 탈퇴했다. 댈러스의 하이랜드파크장로교회는 780만 달러를 두고 아예 소송까지 갔다. 이것은 “이 교단은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과, 실제로 교회 공동체 전체의 재정과 사역 기반을 걸고 그 선언을 관철시키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숫자로 보여준다.
한인 교회가 마주한 이중의 무게
이 구조 안에서 한인 교회들은 종종 더 복잡한 처지에 놓였다. 캘리포니아 로랜드하이츠의 굿셰퍼드장로교회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4년 3월 이 교회는 817명이 투표한 가운데 738명(약 90%)이 PCUSA 탈퇴에 찬성했다. 그러나 소속 노회(샌게이브리얼 노회)는 1년이 넘도록 정식 탈퇴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았고, 이에 지역 한인목사회(로스앤젤레스 동부지역 한인목사회)는 공개서한을 통해 “동일한 정책 아래서도 한인 교회들만 유독 탈퇴가 지연되고 있다"며 인종적 차별 가능성을 공식 제기했다. 결국 담임목사가 개인적으로 PCUSA 관할권을 포기하는 절차(2015년 5월)를 거치고, 교회가 63만 5천 달러를 지불한 뒤에야 ECO 가입이 승인되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압도적 다수의 회중이 신학적 확신을 갖고 결단했음에도, 그 결단이 실제 열매를 맺기까지는 재정적 부담, 행정적 지연, 그리고 (당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소수 이민 교회 특유의 불리함까지 감수해야 했다. “잘못이다"라고 깨닫는 순간과, 실제로 재산·관계·생계의 위험을 감수하며 “완전히 벗겨진 채 광야로” 나가는 순간 사이에는 이런 현실적인 골짜기가 존재한다.
반대편의 사례: 떠나지 않고 안에서 싸운 사람들
그런데 같은 시기, 정반대의 결단도 있었다. 정죄하며 즉각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단 안에 남아 헌법적 절차를 통해 몇 년에 걸쳐 옳음을 관철시키려 한 사람들이다.
PCA(미국장로교, 보수 교단)는 2018년 이른바 “리보이스(Revoice) 컨퍼런스” 논란 — 셀리베이트(독신)를 전제로 “게이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타당한가를 둘러싼 논쟁 — 이후 총회 산하에 “인간의 성(性)에 관한 특별위원회(Ad Interim Committee on Human Sexuality)“를 구성해 수년간 신학적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2021년 48차 총회에서 “게이 크리스천” 등의 정체성 언어를 사용하는 남성의 안수를 금지하는 수정안(Overture 23, 37)이 총회에서는 압도적으로 가결(1438-417 등)되었지만, 노회 3분의 2 비준 문턱을 넘지 못해 두 해 연속(2021년, 2022년) 실패했다. 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문구를 다듬어 다시 발의했고, 2023년 총회를 통과한 수정안이 2023~2024년 사이 노회 비준(찬성 76 대 반대 2)을 얻어 마침내 2024년 최종 발효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개정안을 지지한 이들이 “이 교단도 이단이다"라며 뛰쳐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교단 헌법이 정한 절차 — 총회 발의, 노회 투표, 재차 총회 비준이라는 몇 년짜리 과정 — 를 끝까지 밟았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했고, 논쟁이 격렬한 만큼 반대편의 우려(“셀리베이트를 전제한 사람까지 자동으로 배제되는 것 아니냐”)도 진지하게 반영해 문구를 수정했다. 이것은 정죄가 아니라 인내였고, 결단이었다.
두 종류의 목소리
이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정죄와 결단은 다른 종류의 행위라는 것이다.
정죄는 값싸다. “저 교단은 이단이다”, “저 교회는 다 썩었다"고 선언하는 데는 아무런 대가가 필요 없다. 소속되지 않은 채 바깥에서 돌을 던지는 사람은 재산도, 관계도, 생계도, 오랜 사역의 열매도 걸 필요가 없다.
반면 결단은 비싸다. 굿셰퍼드장로교회 교인들처럼 90%가 넘는 확신을 가지고도 1년 넘게 행정적 지연과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던 이들이 있다. 또한 PCA의 사례처럼, 떠나지 않고 남아서 두 번의 실패를 견디며 몇 년간 헌법적 절차를 밟아 옳음을 관철시킨 이들도 있다. 두 길은 다르지만 — 하나는 떠남을 통한 결단, 하나는 머묾을 통한 결단 —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실제로 대가를 치렀다는 것이다.
나가며
1편에서 다룬 무조건적 분리주의의 위험은, 결국 이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정죄만 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진짜 위험한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를 향한 단호한 경고"가 아니다. 그 경고 자체는 필요하고 성경적이다. 위험한 것은, 그 경고를 자기 자리에서의 결단과 대가 없이 — 관계도 재산도 사역도 걸지 않은 채 — 값싸게 소비하는 태도다.
성경은 광야로 내쫓긴 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 했고(창 12:1),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 동족의 비난을 감수하며 외쳐야 했다(렘 20:7-9). 떠남과 머묾, 두 부르심은 다르지만 둘 다 광야의 고독과 대가를 요구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이 옳은지를 멀리서 판정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그 대가를 실제로 짊어질 용기다. 손가락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벗은 채 광야로 나가는 것, 혹은 광야 같은 자리에 남아 홀로 목소리를 내는 것 — 그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