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세운 제단

한국의 대형교회에 토요 예배라는 유행의 바람이 분다. 모 교회 모 캠퍼스는 지금 토요일마다 네 차례 예배를 드린다. 오전 아홉 시부터 늦은 오후까지, 본당과 여러 층의 예배 공간이 순서대로 채워진다. 이것은 주일 예배를 하루 앞당겨 옮겨놓은 것이 아니다. 주일 체계는 그대로 유지한 채, 그 곁에 또 하나의 독립된 예배 체계를 통째로 세운 것이다. 한 주에 예배당 문이 두 번 열리고, 두 개의 회중이 나란히 존재한다.

부활은 일요일에 일어났다. 초대교회가 안식 후 첫날에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신앙고백이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주후 110년경 마그네시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옛 질서 아래 살던 이들이 이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따라 살아간다고 썼다. 그가 살던 시대는 사도 요한의 제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던 시대다. 그로부터 겨우 한 세대 뒤, 순교자 유스티노스는 로마 황제에게 그리스도인의 예배를 변호하며, “태양의 날"이라 불리는 그 날에 도시와 시골 모든 신자가 함께 모인다고 기록했다. 그는 그 이유를 ‘‘세상이 창조된 첫 날이자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신 그 날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두 증언 사이에는 신학 논쟁도, 목회적 타협도 없다. 그저 교회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왔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콘스탄티누스가 주후 321년 일요일을 공적 휴일로 선포했을 때, 그는 무언가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이백 년 넘게 자리 잡은 관행에 국가의 도장을 찍었을 뿐이다. 중세 내내, 종교개혁 내내, 청교도의 시대 내내 — 그 흐름은 끊긴 적이 없다. 칼빈은 훗날의 청교도들만큼 날 자체에 엄격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요일의 신성함보다 말씀을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함께 모이는 교회의 질서였다. 그러나 그런 칼빈조차 요일을 옮기자거나 흩어놓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4계명을 창조 질서에 속한 영속적 도덕법으로 규정하며, 그 날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안식 후 마지막 날에서 첫날로 옮겨졌을 뿐 폐기된 적은 없다고 못 박았다. 1689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서 22장은 이 조항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주의 날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 부르며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현대 남침례교회의 신앙과메시지(2000년판) 제8조는 이보다 훨씬 관대하다. 특정 요일을 문자적 안식일 계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각자의 양심에 맡긴다고 명시한다. 오늘의 남침례교회는(그리고 여타 대부분의 다른 교회들도 마찬가지로) 옛 청교도들의 엄격함을 그대로 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관대한 조항조차 첫머리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 한 주의 첫날이 주의 날이며, 이는 정기적으로 지켜야 할 그리스도인의 제도라고. 날 자체에 구원이 걸려 있지 않다고 인정하는 전통조차, 여전히 “그 날"이 어느 날인지는 흔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천 년 동안 신학은 갈라지고, 예배 형식은 바뀌고, 신앙고백의 문체는 엄격에서 관용으로 옮겨왔다. 그러나 단 하나, 교회가 언제 모이는가에 대해서는 로마의 지하 묘지에서부터 웨스트민스터 회의장을 거쳐 오늘날 교회에 이르기까지 흔들린 적이 없다. 이 오랜 일치 앞에서, 좌석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하루를 옮기기로 한 결정은 얼마나 가벼운가.

명분은 선하다? — 그것이 문제다

토요예배를 진행하는 또 다른 교회의 담임목사는 ‘‘간호사의 3교대, 경비원의 2교대’‘라는 예를 들었다. 누구든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예이다. 그러나 목회는 사례 하나로 제도를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다. 만 명이 넘는 교회의 예배 체계 전체를 요일 단위로 재편할 만큼 이 문제가 정말 그렇게 크고 시급했는가. 또 다른 목사의 경우는 더 솔직하다: “시작은 방역 좌석 제한이었고, 곁들여진 이유는 건축비 절감과 주차 문제였다.” 여기 어디에도 “예배드릴 수 없어 고통받는 성도"의 절박함은 등장하지 않는다. 팬데믹은 끝났다. 좌석 제한도 끝났다. 그런데 “토요"주일은 남았다. 위기가 지나갔는데도 그 체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위기 대응이 아니라 그저 편리해서 유지하는 관성이다.

“참석자가 안 줄었다"는 자랑의 그림자

나처럼 비판을 가하는 사람을 향하여 이렇게 대답할지 모른다. 토요일에 예배드려도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았다고. 그러나 그 숫자는 자랑이 아니라 질문이어야 한다. 새로 채워진 좌석에 앉은 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살다가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사람인지, 아니면 옆 동네 소형교회에서 이미 예수를 믿던 이가 더 크고 편리한 곳을 찾아 옮겨온 것인지. 한국교회 안에서 대형교회가 소형교회의 신자를 흡수해온 관행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예배당이 가득 찼다는 사실이 복음이 확장되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것은 그저 물이 낮은 곳으로 흘렀다는 증거일 뿐이다.

몸을 조각내는 선교

더 심각한 부분은 따로 있다. 모 교회는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지방/미자립교회를 선발해 매달 후원금을 보내고, 담임목사가 직접 코칭하며, 교구 단위로 자매결연을 맺어 돕는 사역을 운영해왔다. 여기까지는 흠잡을 데 없다. 그런데 이 사역을 토요예배 신설과 결합시켰다. 성도들이 토요일에는 본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주일에는 자신이 후원하는 지방교회나 미자립교회로 흩어져 그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는 구조다. 미자립교회를 돕는다는 명분 앞에서 이 구조는 얼핏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냉정히 물어야 한다. 그렇게 매주 파송된 성도는 그 지방교회의 지체인가, 아니면 주일마다 빌려주는 인력인가. 고린도전서 12장이 그리는 몸은 이렇게 구성되지 않는다. 눈이 오늘은 이 몸에, 내일은 저 몸에… 붙었다가 다시 떼어지는 몸은 몸이 아니라 부품이다. 미자립교회를 돕고 싶다면 재정을 보내고, 사람을 훈련시켜 심고, 함께 기도하며 곁을 지키면 된다. 실제로 그 교회는 이미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회중 자체를 순환시켜 빈 좌석을 채우는 구조까지 굳이 얹은 것은, 선한 목적을 이루는 여러 길 중에서 하필 교회론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길을 골랐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크기가 면책하지 않는다

야고보는 교사 된 자가 더 큰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히브리서는 목자를 향해 성도의 영혼을 두고 회계 보고할 자라고까지 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 교회는 크니까"라는 문장은 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크기 때문에 더 무겁다. 만 명이 보고 따라 하는 교회가 신학적 숙고 없이 관행을 세우면, 그 관행은 곧 백 개의 작은 교회가 아무 고민 없이 베끼는 표준이 된다. 이것이 두려운 일이다. 무조건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결정이 정당했다고, 모범이 되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일은 문자적 안식일 계명이 아니다. 그러나 로마의 지하 묘지에서부터 오늘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 하루를, 좌석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예배 체계를 하나 더 세워도 무방한 편의의 영역으로 만드는 순간, 우리는 이천 년 교회가 함께 지켜온 무언가를 조용히 내려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