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에 속했으니 이단인가
낙인과 분별 사이
1편에서는 무조건적 분리주의가 진리보다 진영 순수성 과시에 골몰하는 태도라는 것을, 2편에서는 정죄는 값싸지만 실제 결단(떠남이든 머묾이든)은 비싸다는 것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두 논지를 WCC(세계교회협의회)·WEA(세계복음주의연맹)라는 구체적 대상에 대입해본다.
질문은 이것이다. “WCC/WEA에 속해 있으니 이단이다"라는 낙인은 정당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 낙인은 대개 그 조직이 실제로 무엇인지, 그 조직 안에서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전혀 모른 채 던져진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조직들의 실제 역사 안에는 2편에서 다룬 것과 정확히 같은 구도 — 떠남을 통한 값비싼 결단과, 머묾을 통한 값비싼 결단 — 이 이미 존재한다.
떠난 자들의 대가: SBC와 BWA
2004년 6월 15일, 미국남침례교(SBC)는 인디애나폴리스 총회에서 침례교세계연맹(BWA) 탈퇴를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는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SBC는 1905년 BWA 창립을 주도한 핵심 교단이었고, 탈퇴 직전까지 BWA 연간 예산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었다. 탈퇴의 직접적 계기는 2003년 BWA가 자유주의 신학 성향의 “협동침례교친교회(Cooperative Baptist Fellowship)“를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이었고, 남침례신학교 총장이던 페이지 패터슨(Paige Patterson)은 총회에서 “Alliance(동맹)라는 단어에 주목하라. 당신이 동맹을 맺은 대상에 대해 최소한 암묵적으로 동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결정의 대가는 명확했다. 99년간 이어온 관계, BWA 예산의 3분의 1이라는 재정적 기여, 그리고 세계 최대 침례교 연합체 안에서의 발언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BWA 총무 덴턴 로츠(Denton Lotz)는 “우리가 남침례교인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남침례교인들이 우리를 떠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것은 정죄가 아니라 실제 대가를 치른 결단이었다.
떠난 자들의 대가: 정교회와 WCC
비슷한 시기, 정교회 진영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1997년 5월 20일, 그루지야(조지아) 정교회 시노드는 국내 수도원 진영의 강한 압박 속에 WCC와 유럽교회협의회(CEC) 동시 탈퇴를 전격 결정했다. 이는 정교회 교단이 WCC를 탈퇴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불가리아 정교회도 공식 탈퇴했다. 같은 시기 러시아 정교회는 총대주교회의에서 “정회원에서 옵저버 자격으로 격하하자"는 강한 내부 압박을 받았으나, 완전 탈퇴 대신 다른 정교회들과의 협의를 거치기로 타협하며 활동을 잠정 중단(suspend)하는 선에서 머물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WCC 사무총장 콘라드 라이저(Konrad Raiser)의 반응이다. 그는 그루지야 총대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깊은 유감과 슬픔"을 표하면서도, 탈퇴의 배경이 “교회 내부의 근본주의 진영의 압박"이었다는 실무진 보고를 받아들이고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두겠다고 답했다. 이 역시 값비싼 결단이었다 — 조지아·불가리아 정교회는 국제 에큐메니컬 네트워크에서의 발언권과 관계를 실제로 내려놓았다.
머문 자들의 대가: 정교회 특별위원회와 실제 개혁
그런데 정확히 이 지점에서, 2편의 PCA 사례와 놀랍도록 닮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루지야·불가리아의 탈퇴 이후 러시아·세르비아 정교회를 비롯한 여러 정교회는 “떠나느냐 마느냐"를 두고 내부에서 격론을 벌였지만, 결국 완전 탈퇴 대신 WCC 안에 남아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길을 택했다.
1998년 하라레(짐바브웨) 총회에서 정교회들의 강한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정교회 참여에 관한 특별위원회(Special Commission on Orthodox Participation in the WCC)“가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는 절반은 정교회, 절반은 WCC 집행위원회가 지명한 위원으로 구성되어 4년간(1998~2002) 작업했다. 핵심 문제의식은 이것이었다 — 정교회는 WCC 회원 교단 중 20여 개에 불과하지만 세례 교인 수로는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데, 다수결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300개가 넘는 개신교 계열 군소 교단들에게 표수로 압도당한다는 것.
이 특별위원회의 최종 보고서는 WCC의 의사결정 방식을 다수결에서 “합의제(consensus model)“로 전면 전환할 것을 권고했고, 이 권고는 실제로 2005년 중앙위원회에서 시범 적용된 뒤 2006년 제9차 총회에서 정식 채택되어 WCC 헌장 자체가 개정되었다. 이것은 “저 조직은 틀렸으니 나가겠다"가 아니라, “저 조직 안에 남아 몇 년간 끈질기게 절차를 밟아 구조 자체를 바꾼” 사례다. 손가락질이 아니라 결단이었고, 대가는 수년간의 협상과 인내였다.
WEA는 애초에 다른 종류의 조직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WEA는 WCC와 같은 방식으로 비교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1편에서 다뤘듯, WEA의 “신앙고백(Statement of Faith)“은 성경의 무오성과 최종 권위,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대속적 속죄·육체 부활, 이신칭의를 명시적 가입 조건으로 규정한다. 이는 WCC가 처음부터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은 교단들을 함께 품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것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WCC와 WEA는 둘 다 에큐메니컬 조직이니 도매금으로 같이 취급해도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용을 모르는 손가락질의 전형이다.
낙인과 분별의 차이
이 세 가지 사례 — SBC의 탈퇴, 조지아·불가리아 정교회의 탈퇴, 러시아 등 정교회의 잔류·개혁 — 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이들 모두 실제로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 “그 조직이 실제로 무엇인지,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얻고 잃는지"를 놓고 몇 년간 고민하고 협상하고 결단했다.
반면 “WCC/WEA에 속했으니 이단"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조직들의 신앙고백 문구조차 읽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SBC가 무엇을 걸고 떠났는지, 러시아 정교회가 무엇을 걸고 남아 싸웠는지, WCC의 의사결정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지 못한 채 조직 이름 하나만으로 판단을 끝낸다. 이것은 1편에서 다룬 “무조건적 분리주의"의 가장 순도 높은 형태다 — 진리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내용을 모른 채 낙인을 찍는 것으로 자기 진영의 순수성을 확인하려는 태도.
나가며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1편에서 다룬 대로 1차 교리(그리스도의 신성, 성경의 권위, 이신칭의 등) 훼손 여부를 기준으로 한 정확한 분별. 둘째, 2편과 3편에서 다룬 대로 그 분별을 실제 결단으로 옮기는 용기 — 떠나야 한다면 SBC처럼 관계와 재정을 걸고 떠나고, 남아서 개혁해야 한다면 러시아 정교회처럼 수년간 인내하며 절차를 밟는 것.
이 둘 중 어느 쪽도 하지 않은 채, 조직 이름 하나만 듣고 “저기는 이단이다"라고 던지는 것은 분별이 아니라 게으름이다. 정죄는 지식도 용기도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실제 분별과 결단은 둘 다를 요구한다. 오늘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