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아래의 권력 게임
목회자 집단을 좀먹는 보이지 않는 싸움
교회는 복음의 공동체이며, 십자가의 질서로 세워진 몸이다. 그러나 어떤 교회 안에서는 강단 위의 설교와 달리, 강단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질서가 작동한다. “누가 몇 년 차인가”로 서열을 나누고, 파벌을 형성하며, 새로 온 사역자를 길들이고, 심지어는 훗날 자신의 ‘성전’을 하나 차지할 것처럼 암묵적인 권력 투쟁을 벌이는 모습까지 나타난다면, 그것은 단순한 조직 갈등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본질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년차가 계급이 되는 순간
교회 안에서 경험과 연륜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계급이 되고,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암묵적인 특권과 발언권, 영향력을 독점하는 구조가 된다면, 교회는 이미 복음의 질서를 떠난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서열 다툼을 보시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3–44).
교회 안에서 ‘먼저 있었음’이 권위의 근거가 되는 순간, 십자가는 배경으로 밀려난다. 섬김이 아니라 위치가 중요해지고, 인격이 아니라 연차가 힘을 갖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줄 세우기 문화가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줄은 복음이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해 정해진다.
파벌과 세력화: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일
부목사들 사이에 암묵적인 세력 다툼이 존재하고,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묶이며, 누가 어느 편인지가 은근히 분류되는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간관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론의 붕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파 문제를 강하게 책망했다.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하였다 하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고전 1:12–13).
파벌은 결국 사람을 따르는 문화다. 그리고 사람을 따르는 문화는 필연적으로 권력 경쟁을 낳는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실제로는 내부 권력 구도를 계산하는 공간이 된다면, 이미 본질은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다.
‘지성전’을 꿰차려는 심리: 목회 직분의 세속화
더 위험한 지점은 이것이다. 일부는 마치 언젠가 자기 몫의 교회를 하나 확보해야 할 자리처럼 여기며, 미리부터 영향력을 계산하고, 줄을 세우고, 세력을 구축한다. 겉으로는 협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견제하고, 약점을 탐색하고, 기회를 엿본다.
이것은 목회를 소명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일종의 경력 관리와 권력 상승의 통로로 보는 관점이다. 목회 직분이 섬김의 자리에서 ‘차지해야 할 자리’로 변질되는 순간, 교회는 기업 조직과 다를 바 없어지고 만다.
베드로전서는 목회자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2–3).
‘주장하는 자세’는 단지 성도들을 향한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역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력 의식이 자리 잡는 순간, 동역은 사라지고 경쟁이 남는다.
협력이 아니라 견제가 일상이 되는 구조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협력이 아니라 견제다. 누가 돋보이면 경계하고, 누가 영향력을 얻으면 불편해하며, 공동의 사역 성공보다 개인의 위치가 더 중요해진다. 결국 사역은 팀 사역이 아니라 개인 경기장이 된다. 겉으로는 한 교회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공간이 된다.
에베소서 4장은 교회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직분의 목적은 몸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견제와 세력 다툼이 반복되면 몸은 세워지지 않고 소모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공동체의 영적 에너지는 내부 경쟁으로 낭비된다.
이것은 단순한 조직 문화가 아니라 회개의 문제다
어떤 이는 말할 수 있다. “어디나 그런 것 아니냐”고. 그러나 교회는 ‘어디나 그런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질서를 보여주어야 할 공동체다.
년차로 줄 세우고, 파벌로 나누고, 세력으로 견제하며, 장래의 자리를 계산하는 문화는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성숙하지 못한 문화가 아니라, 십자가의 질서를 거부하는 구조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
교회의 리더십은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아니라, 아래로 흘러내리는 섬김이다. 진짜 권위는 오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래 섬겼기 때문에 주어진다.
강단에서 겸손을 설교하면서, 강단 아래에서는 권력 게임을 벌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
년차 문화는 결국 계급을 만들고, 파벌 문화는 결국 몸을 찢고, 권력 투쟁은 결국 소명을 변질시킨다. 교회가 다시 교회 되기 위해서는, 구조 개선 이전에 회개가 필요하다. 복음의 질서가 다시 회복되지 않는 한, 어떤 조직 개편도 근본적 해답이 될 수 없다.
교회는 자리 경쟁의 장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자리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이미 길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