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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단의 선택, 두 교단의 미래

남침례교회와 한국 침례교회, 갈림길에서 무엇을 택했는가


1993년 3월, 미국 루이빌. 서던 침례신학교(SBTS) 이사회는 33세의 젊은 청년을 제9대 총장으로 선출했다. 알버트 몰러. 그는 취임 직후 교수진 전원에게 신앙고백서 서명을 요구했다. 거부하는 자는 떠나야 했다. 700명의 학생이 줄었다. 교수들의 불신임 투표가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미디어 헬기가 잔디밭 시위 현장을 날았다. 몰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 한 질문에 집중했다. “이 신학교는 누구의 것인가? 잔디밭의 시위대의 것인가, 교회의 것인가?”

같은 시대, 한국. 기독교한국침례회는 다른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성장할 것인가?” 교회성장학이 신학교 커리큘럼을 채웠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모든 목회자의 꿈이 되었다. 간판은 침례교회인데, 문을 열면 순복음 스타일이었다. 서른 해가 지난 오늘, 두 교단의 현재는 그 선택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복음이냐, 방법이냐 — 이것이 진짜 질문이었다

역사를 돌아볼 때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SBC의 위기는 신학적이었고, 한국 침례교회의 위기도 신학적이었다. 그러나 그 신학적 문제의 성격이 달랐다.

SBC는 성경의 권위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싸웠다. 교수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했고, 성경 무오를 해체했고, 창세기의 역사성을 신화로 가르쳤다. 이것은 전선이 선명한 싸움이었다. 무엇이 잘못인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가 명확했다. 그래서 싸울 수 있었고, 이길 수 있었다.

한국 침례교회의 문제는 훨씬 교묘했다. 성경 무오를 부정하는 교수는 없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목사도 없었다. 그러나 복음이 수단화되고 있었다. 교회가 성장 기계로 변해가고 있었다. 설교가 동기부여 강연을 닮아가고 있었다. C. 피터 와그너가 말한 “헌신된 실용주의” — 무엇이 효과적인가를 묻는 신학 — 가 무엇이 참된가를 묻는 신학을 조용히 대체하고 있었다. 이 변질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의 누적으로 일어났기에, 아무도 문제를 특정하지 못했고 아무도 교정하지 못했다.

맥가브란은 말했다. “수적 성장이 교회의 주된 목적이다.” 와그너는 덧붙였다. “사회 참여가 깊어질수록 교회 성장은 줄어든다.” 이 두 문장이 한국 교회의 목회 철학을 구조화했다. 숫자가 곧 성공이었다. 큰 교회가 곧 복 받은 교회였다. 조용기 목사가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운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증거였다. 그 기준으로 보면 쇠퇴하는 교회는 기도가 부족한 것이고, 방법론이 잘못된 것이고, 목사가 무능한 것이다. 복음 자체를 재검토할 이유가 없었다.

그 논리의 끝이 어디인지,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방법론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장, 그 붕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93년 기준 교인 70만 명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와그너는 조용기 목사를 “국제 수퍼사도”로 공개 지지했다. 세계 교회성장학의 학문적 아버지와 실천적 아버지가 손을 잡고 만든 모델이었다. 수많은 한국 목사들이 “제2의 조용기”를 꿈꾸며 목회했다.

2023년, 대법원은 조용기 목사에게 최종 유죄를 선고했다. 배임과 횡령. 교회는 아들들에게 세습되고 있었고, 일가가 교회 연관 기관을 장악했으며, 교회의 돈이 사유재산처럼 흘러다녔다.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실패인가? 아니다. 이것은 구조적 귀결이다. 교회성장학이 조장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절대화, 성장을 검증의 기준으로 삼는 신학, 목사를 사도로 추앙하는 문화가 만들어낸 제도적 부패다.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면, 아무도 그를 견제하지 못한다. 견제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침례교회는 이 구조를 교훈으로 삼았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여자 목사 안수를 허용했다. 호칭 장로를 도입했다. 신사도 운동과 은사주의 집회에 대한 교단 차원의 공식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도입하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다고 부른다. 이것이 세속화다. 아무도 그것을 세속화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

여자 목사 안수는 단순한 젠더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성경 해석의 권위 문제다. 바울이 디모데전서 2장과 디모데전서 3장에서 말한 것을 문화적 제약으로 해소하면, 성경 해석의 문은 열린다. 그 문이 열리면 다음은 무엇인가? 역사가 이미 답해주었다. 웨인 그루뎀은 말했다. “자유주의자는 모두 평등주의를 지지한다. 오늘날 미국 내의 자유주의 교단이나 신학교에서 여성의 성직 안수를 반대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것은 여성 안수 자체가 자유주의라는 말이 아니다. 여성 안수를 허용한 신학적 논리가 자유주의로 가는 문을 연다는 경고다. 그 경고를 SBC는 들었고, 한국 침례교회는 듣지 않았다.

남침례교회의 선택: 뼈를 깎는 길

몰러가 선택한 길은 쉽지 않았다. 3년 만에 학생 700명이 줄었다. 압도적인 불신임 투표가 통과됐다. 전국 언론이 “신학교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보수 원리주의자”로 그를 묘사했다. 그는 묻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학생이 늘까?” 대신 물었다. “무엇이 진리인가? 이 신학교는 무엇을 훈련해야 하는가?”

그 선택의 결과는 세월이 대답했다. 2022년 SBTS 재학생 3,348명. 수많은 신학교들이 캠퍼스를 팔고 통폐합하는 시대에, SBTS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신학교가 되었다. 이것이 전략의 승리인가? 아니다. 이것은 복음의 승리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히 하고, 그 기준으로 교수를 세우고, 그 기준으로 목회자를 훈련했더니, 교회들이 그 신학교를 신뢰하게 되었다.

몰러가 남긴 말은 단순하다. “우리는 잔디밭의 시위대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복음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이 한 문장이 개혁의 전부다. 신학교는 유행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진리를 훈련하는 곳이다. 목사는 성장의 전문가가 아니라 복음의 선포자다. 교회는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는 공동체다.

한국 침례교회의 미래: 두 가지 길

지금 한국 침례교회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첫 번째 길은 계속 지금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여자 목사를 허용했으니 다음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는 다른 문제들을 허용할 것이다. 신사도운동적 은사주의 집회에 관대한 문화는 더 깊어질 것이다. 교회성장을 위한 방법론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미 역사가 보여준 것이 있다. 유럽의 주류 교단들이다. 미국의 주류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가 걸어간 길이다. 신학적 경계선을 허물면 교단은 문화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문화를 따라가는 교회는 결국 문화에 흡수된다. 흡수된 교회는 사라진다.

두 번째 길은 몰러가 선택한 길이다. 그것은 유행이 아니라 진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침례신학대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다시 묻는 것이다. 교회성장학 방법론이 아니라 성경 강해를 훈련하는 것이다. 여자 목사 안수와 호칭 장로 도입이 어떤 신학적 논리 위에 서 있는지 직시하고, 성경이 그 논리를 지지하는지 정직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이 길은 아프다.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수가 줄 수도 있다. 몰러처럼 불신임 투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통 없이 회복은 없다.

교회성장학은 이미 유행이 끝났다. 와그너는 죽었다. 조용기 목사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빈야드 운동은 사라졌다. 신사도개혁운동은 비정통으로 판정되었다. 수적 성장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질문이다. 그 방법론들이 남기고 떠난 자리에, 과연 복음이 서 있는가?

마지막으로

SBC 보수 대각성 운동의 핵심 인물 페이지 패터슨(Paige Patterson)은 말했다. “우리는 이 기관들이 누구의 것인지를 다시 물어야 했습니다.” 그 물음이 SBC를 살렸다.

한국 침례교회도 지금 그 물음 앞에 서 있다. 기독교한국침례회는 누구의 것인가? 성장을 원하는 목사들의 것인가? 유행을 따르는 시대의 것인가? 아니면 성경의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들의 것인가?

두 교단의 미래는 이미 그 대답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강단에서, 신학교 교실에서, 총회 투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복음은 유행이 아니다. 복음은 지나가지 않는다. 유행을 선택한 교단은 유행과 함께 사라지고, 복음을 선택한 교단은 복음과 함께 남는다. 역사는 예외를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