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입과 리더십
강단 안팎의 언어에 대하여
최근 한국 교계가 또다시 시끄럽다. A 목사가 사역자들에게 심각한 언어폭력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과연 충격받을 일인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교계 곳곳에서는 이와 유사한, 아니 어떤 경우에는 그보다 더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다.
B 목사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공개적으로 부목사들을 보험회사 영업사원 다루듯 전도 실적으로 줄 세우고, 실적이 부진한 이에게는 “목사 그만하고 택시나 몰아라”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해당 사역자의 가문과 혈통까지 들먹이며 “그 집안 유전자 자체가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반면 자신의 유전자는 탁월하다는 근거로 자기 아들이 대형교회 담임으로 청빙된 일을 자랑스럽게 거론했다는 설은 씁쓸함을 더한다.
이것은 단순히 ‘말실수’가 아니다. 구조적이고 반복적이며 의도적인 언어폭력이다.
말은 신학이다
성경은 언어를 단순한 소통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야고보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약 3:6)라고 했고, 잠언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잠 18:21)라고 선언한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엡 4:29)라고 명령하면서, 그 반대편에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위치시킨다.
목사의 언어는 그의 신학의 현현(顯現)이다. 강단에서 은혜를 선포하는 입이 강단 밖에서 사역자를 짓밟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격 결함이 아니라 신학적 모순이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받은 인간을 실적의 도구로, 혹은 유전자의 산물로 환원하는 언어는, 창조론적으로도 기독론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권위주의와 목양의 혼동
한국 대형교회 담임목사 문화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는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혼동한다는 점이다. 목사에게 권위가 있다. 그러나 그 권위는 말씀에서 오는 것이지, 직위나 교세(敎勢)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전통이 일관되게 강조해온 것처럼, 목사는 주님의 양 무리를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다. 베드로전서 5장 3절은 장로들에게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명령한다. 개혁주의 전통은 일관되게 목회 권위의 정당성이 오직 말씀의 신실한 선포와 삶의 일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목사가 사역자에게 폭언을 퍼붓고 그것을 ‘열정’ 혹은 ‘훈련’으로 포장한다면, 그것은 개혁주의적 목회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세습과 폭언의 구조적 연결고리
주목할 것은 이런 언어폭력이 교회 세습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의 유전자적 우월성을 주장하고 그것을 아들의 사역 승계와 연결짓는 논리는, 교회를 하나님의 공동체가 아닌 가문의 왕국으로 인식하는 세계관의 반영이다. 교회가 목사 한 사람의 왕국이 될 때, 사역자들은 신하가 되고, 폭언은 통치 수단이 된다.
이것은 교회론의 문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엡 1:22-23), 목사는 그 몸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다. 청지기가 주인 행세를 할 때 폭언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폭언이 오랫동안 묵인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부목사들은 생계와 사역의 지속을 위해, 성도들은 존경하는 목사에 대한 환상을 지키기 위해, 교단은 대형교회의 영향력 앞에서 침묵을 선택해왔다.
이 침묵의 공모(共謀)가 문제를 키워왔다. 가해자의 죄를 덮어주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 덕목이 아니다. 마태복음 18장의 권징 원리는 죄를 드러내고 회복을 도모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책임임을 분명히 한다. 침묵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가해자의 회개 기회를 빼앗는다.
교계와 교단의 책임
개 교회 목사의 문제를 개 교회 차원에서만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교단 차원의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 사역자 보호를 위한 명확한 윤리 강령, 폭언 및 갑질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징계 절차, 그리고 피해 사역자들을 위한 실질적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신학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목회리더십을 가르치면서 섬김과 자기 부인의 신학을 충분히 훈련시키지 못한다면, 신학교는 권위주의적 목사를 양산하는 데 일조하는 셈이다.
목사의 말이 설교다
복음의 은혜를 먼저 깊이 경험한 자만이 타인을 섬길 수 있다. 폭언을 일삼는 목사는, 어쩌면 자신이 먼저 복음 앞에 무릎 꿇고 고꾸라지는 경험이 필요한지 모른다.
목사의 말은 강단에서만 설교가 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식탁에서 나누는 모든 말이 그의 신앙의 실제를 드러낸다. 강단의 언어와 삶의 언어가 일치하는 곳에서만 진정한 목회가 시작된다.
한국 교회가 이 위기를 단순한 개인의 스캔들로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교회론의 위기이며, 목회론의 위기이며, 궁극적으로는 복음 증거의 위기다. 그 위기를 직시하고 구조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에 주어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