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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는 면피였나

원로목사 추대가 드러낸 한국 교회의 민낯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부산 포도원교회 담임 김문훈 목사가 교역자 회의에서 부목사와 전도사들을 향해 “도끼로 대가리를 찍어버린다”, “네 아가리를 찢어 놓는다”는 등 차마 옮기기도 어려운 수위의 폭언과 욕설을 수년간 일삼아 왔다는 사실이 녹취 파일을 통해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더 참혹하다. 한 전직 교역자는 정신적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다고 했으며, 포도원교회를 떠난 전도사 3명 중 2명은 현재 사역 자체를 그만둔 상태라고 밝혔다.

여론이 들끓자 김 목사는 2026년 2월 26일 예장고신 부총회장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하루 만에 담임목사직까지 사임했다. 총회장 추대를 목전에 두고 일어난 사퇴였다. 한국 교회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리고 불과 3주 남짓 지난 3월 22일, 포도원교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포도원교회는 공동의회를 열고 김문훈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참여한 교인 1,820명 중 1,631명이 찬성하여 89.6%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사퇴는 사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은퇴 준비였다.

‘원로목사’라는 제도의 민낯

원로목사 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수십 년을 신실하게 섬기고 교회와 후임자를 아름답게 세우고 물러나는 목사에게 예우와 감사를 표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문제는 그 제도가 지금 이 경우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느냐다.

원로목사직은 통상 명예직이지만, 한국 교회 현실에서 그것은 결코 단순한 명예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의 발언권, 상징적 권위, 재정적 예우, 후임자 인사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 — 이 모든 것이 ‘원로’라는 직함에 묶여 있다. 담임목사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교회 안에서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받지 않는 권위자로 고착될 수 있다.

사퇴가 징계였다면, 원로 추대는 그 징계를 무효화하는 행위다. 교회 스스로가 “우리는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89.6%라는 숫자가 말해 주는 것

찬성률 89.6%는 경이로운 숫자다. 그리고 이 숫자야말로 한국 대형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투표에 참여한 1,800여 명의 교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오랜 세월 그 설교를 들으며 신앙을 키웠고, 그 목사를 통해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그 감사와 애정은 진짜다.

그러나 감사와 분별은 다른 문제다. 수년에 걸쳐 부교역자들에게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언어폭력을 행사했으며, 그로 인해 일부는 사역 자체를 포기했고, 일부는 1년이 넘도록 심리적 후유증을 겪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 습관’ 문제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요, 권력을 이용한 지속적 학대다. 세상 기준으로도 해고 사유가 되고, 나아가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행위다.

교회가 이를 89.6%의 찬성으로 덮어버렸다는 것은, 이 교회 안에 내부 비판과 성찰의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교인들은 이 상황을 “우리 목사님을 핍박하는 외부의 공격”으로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한국 대형 교회 목회 권력의 민낯이다.

피해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 일 가운데 가장 조용한 목소리가 있다. 피해 교역자들이다.

폭언을 견디다 사역을 접은 이들, 수년 간의 상처를 껴안고 다른 교회에서 다시 서있는 이들,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여전히 침묵 속에 있는 이들. 그들에게 이 89.6%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받은 상처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그것이다. 원로목사 추대는 당사자에게 영예를 주는 행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두 번째 상처를 입히는 행위다.

교회 공동체가 무엇을 상징적으로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단순히 행정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 선택을 통해 “우리는 누구의 편인가”를 선언한다. 포도원교회는 3월 22일, 그 질문에 분명히 답했다.

이것이 예외인가, 패턴인가

누군가는 이 사건을 특수한 개인의 문제로 읽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것이 예외가 아니라 패턴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 대형 교회 담임목사의 도덕적 실패가 발생했을 때, 해당 교회가 그를 징계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구조를 쇄신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의 경우 교회는 목사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침묵시키거나 교회 밖으로 밀어내며, 논란이 가라앉으면 조용히 원상복귀를 도모한다. 이번에도 그 패턴이 반복됐을 뿐이다.

이것은 제도의 실패이기 이전에, 신학의 실패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요약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공의, 인자, 겸손 — 이 세 가지는 목회 권력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약한 자 — 권력 없는 부교역자, 전도사, 교회의 아랫사람들 — 앞에서 어떻게 서느냐로 증명된다.

디모데전서 3장이 감독의 자격으로 요구하는 것 중 하나는 “폭행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딤전 3:3)라는 단순하고도 준엄한 기준이다. 이 기준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교회는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포도원교회 교인의 89.6%는 아마도 김문훈 목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진실을 덮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아프고 불편한 분별을 요청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가해자를 조용히 예우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피해자를 찾아가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가해자가 진실한 회개와 배상의 과정을 밟도록 구조를 만들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교회 내 권위 구조를 재점검하는 것이다. 그것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다(마태복음 3:8).

사퇴는 책임이 아니다. 원로 추대는 회복이 아니다.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형식적인 절차를 통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상황을 “우리는 이미 처리했다”고 포장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다음 세대 목회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권력자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89.6%의 침묵은, 그 가르침의 공모자다.

(이 칼럼은 특정 교인이나 교회를 정죄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패턴에 대한 질문이며, 우리 모두가 그 구조 안에 있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된 고통스러운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