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그러나 하나님의 절망
에스라 1:1-4 묵상
오늘 새벽, 에스라 1장을 펼쳤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에스라 1:1)
본문을 읽으며 기도하는 중에, 예상치 못한 단어 하나가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절망.
처음에는 낯설었다. 이 본문은 절망의 본문이 아니지 않은가. 포로된 백성의 귀환을 선포하는, 오히려 희망과 회복의 본문 아닌가.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내 마음에 “절망”이라는 단어를 두셨을까.
고레스의 조서와 응답하지 않은 백성들
고레스의 조서는 단순한 정치적 칙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의 무대 위에서 성취되는 사건이었다. 이방 왕의 입술을 빌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올라가라. 돌아가라. 재건하라.”
그런데 응답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에스라는 기록한다.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곧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려 하는 자들이 다 일어나니.”(에스라 1:5)
“그 마음이 감동을 받고.” 역으로 읽어야 한다. 마음이 감동을 받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는 뜻이다. 아니, 대다수가 그러했다. 바벨론에서 70년을 살았다. 집을 지었고, 장사를 했고, 아이들은 아람어를 모국어로 배웠다. 포로지의 삶이 낯설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기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고, 성전은 조상들의 신앙 유산이 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뿌리를 내렸고, 거기서 안락했다.
조서가 선포되었다. 하나님의 초청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머물렀다. 가지 않았다.
세속화된 안락함과 변화에 대한 무감각
오늘 새벽, 나는 그 장면이 지금 이 땅의 교회와 겹쳐 보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고 나는 믿는다. 국제 정세의 격변을 통해, 한국 사회의 뒤흔들림을 통해, 교회 안에 거듭 울리는 개혁과 갱신의 촉구를 통해. 마치 이방 왕 고레스의 입술이 하나님의 도구였듯, 역사의 이 소란스러운 무대 위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해 무언가를 말씀하고 계신다.
“일어나라. 회개하라. 재건하라.”
그런데 교회는 어떠한가.
많은 이들이 이미 세상에 뿌리를 내렸다. 집을 지었고, 지위를 쌓았고, 대형교회의 편안한 좌석에 앉아 있다. 변화는 불편하다. 회개는 비용이 든다. 재건은 위험하다. 그러므로 그 초청에 마음이 감동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내가 느낀 “절망”의 정체였다.
하나님의 절망
성경은 하나님께서 절망하신다고 직접 말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당신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고레스가 조서를 내리든, 그 백성이 응답하든 않든, 예루살렘은 결국 재건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본문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깊은 감정을 감히 헤아려 보게 된다. 그것은 인간적인 의미의 좌절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이다. 잃어버린 아들을 향해 달려 나갔던 아버지(눅 15:20),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던 예수님(눅 19:41), “내 백성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시 81:11)라고 탄식하셨던 그 마음.
당신이 친히 길을 여셨는데, 당신의 백성이 걷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절망이라 부르고 싶었다. 신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갑고 무관심한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라, 피를 흘리도록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분의 마음이다.
왜 나는 한국에 왔는가
이 묵상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나는 왜 미국에서의 목회를 정리하고 이 땅에 왔는가. 다시 생각했다. 아니, 더 깊이 생각했다. 단순히 사역의 기회 때문이 아니었다. 개혁주의 신학을 심겠다는 야망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 뿌리에는, 지금 이 땅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그 마음, 그 절망과 같은 사랑을 나도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서는 이미 내려졌다. 길은 열려 있다. 문제는 감동받은 마음이다.
나는 오늘 새벽, 그 감동이 다시 내 안에서 갱신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들이 안락한 바벨론의 집을 내려놓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기도했다.
하나님의 절망이 헛되지 않기를.
그분의 조서가 여전히 유효하기를.
2026년 4월, 새벽 기도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