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신대 위기, 재정 문제가 아니다
신학의 죽음이다
2026년 5월 7일,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 피영민은 재학생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신학과를 제외한 전 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은 정중했고, 약속도 담겨 있었다. 졸업까지 교과과정을 보장하겠다, 교수진을 유지하겠다, 국가장학금을 회복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 공문을 읽으면서 약속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총장이 이 결정을 정당화하는 논리다. “학생 여러분의 실질적인 혜택인 ‘국가장학금’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필연적인 선택입니다.” 국가장학금. 한국침례신학대학교의 존재 이유가 국가장학금 수혜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재정 위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재정 위기, 충원율 위기, 인구절벽의 문제로 읽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증상이지 병인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학생들이 침신대에 오지 않는가? 한국 침례교인 가정의 자녀들이, 침례교 목사가 되고 싶은 청년들이, 왜 침신대를 선택하지 않는가? 왜 미국 유학을 택하고, 왜 타 교단 신학교를 택하는가?
충원율은 숫자다. 그 숫자 뒤에는 신뢰의 문제가 있다. 침신대가 제대로 된 목사를 만들어낸다는 신뢰, 침신대에서 배운 신학으로 한국 교회의 강단을 감당할 수 있다는 신뢰. 그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재정으로 시작된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학으로 시작된 위기다.
신학교가 신학을 잃으면 무엇이 남는가
침신대는 지난 수십 년간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성경의 무오성을 가르쳤는가. 복음 중심의 설교를 훈련시켰는가. 칭의와 은혜의 교리를 선명하게 가르쳤는가. 침례교 신학의 정수인 신자의 침례, 지역 교회의 자율성, 그리스도의 주권을 깊이 있게 다루었는가.
나는 그 답을 한국 침례교 강단에서 본다. 오늘날 한국 침례교 교회의 강단에서 무슨 말이 선포되고 있는지를 보면, 침신대에서 지난 수십 년간 무엇이 가르쳐졌는지를 알 수 있다. 강단은 신학교의 성적표다. 그 성적표는 솔직히 말해 참혹하다.
SBC는 어떻게 살아났는가
비교가 아프지만 필요하다. 미국 남침례교(SBC)는 1970-80년대 자유주의 신학의 침투로 위기를 맞았다. 신학교들이 흔들렸고, 강단이 흔들렸고, 교단이 흔들렸다. 그때 보수파가 선택한 전략은 단 하나였다. 신학교를 되찾는 것. Adrian Rogers, Paige Patterson, Paul Pressler가 주도한 보수 재건운동(Conservative Resurgence)의 핵심은 신학교 이사회를 바꾸고, 총장을 바꾸고, 교수진의 신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Albert Mohler가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총장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도 그것이었다. 자유주의 교수들을 내보내고, BF&M(침례교 신앙과 메시지)에 충실한 교수진으로 재편했다.
결과는 무엇인가. Southern Seminary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SBC는 미국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단으로서 신학적 정체성을 회복했다. 신학교가 바뀌자 강단이 바뀌었고, 강단이 바뀌자 교단이 바뀌었다. 침례교단도 침신대가 바뀌지 않으면 교단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교단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공문 어디에도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의 이름은 없다. 총장 혼자 결정하고, 총장 혼자 약속하고, 총장 혼자 서명했다.
교단은 어디 있는가. SBC의 Cooperative Program은 교단 교회들이 헌금의 일정 비율을 신학교 지원에 사용하는 구조다. 신학교는 교단의 심장이라는 인식이 재정 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침례교단에는 그런 구조도, 그런 인식도 희박하다. 교단이 침신대를 교단의 자산으로, 다음 세대 강단을 준비하는 심장으로 여긴다면, 지금 이 위기 앞에서 침묵할 수 없다. 지금의 침묵은 교단이 침신대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침신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그것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신학적 갱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첫째, 신학적 정체성을 선언하라. 우리는 성경의 완전한 권위를 믿는다, 우리는 복음 중심의 목회자를 훈련한다, 우리는 침례교 신학의 유산 위에 선다 — 이것을 문서로, 커리큘럼으로, 교수진 채용 기준으로 분명히 하라.
둘째, 강해설교를 커리큘럼의 중심에 놓아라. 목사는 설교자다. 설교자는 본문을 강해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신학교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교회성장론, 리더십 세미나, 마케팅 전략이 설교 훈련을 대체하는 커리큘럼은 목사가 아니라 종교 기업가를 만들어낼 뿐이다.
셋째, 작지만 선명한 신학교를 목표로 삼아라. 규모의 경쟁은 이미 졌다. 이제는 정체성의 경쟁을 해야 한다. 소수라도 신학적으로 무장되고 강단에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목사를 길러내는 학교, 그것이 침신대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침신대가 살아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한국 침례교 교단에서 신학교의 회복 없이 강단의 회복은 없고, 강단의 회복 없이 교회의 회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과 살아나는 것은 다르다. 국가장학금을 회복하고, 충원율을 채우고, 인증평가를 통과하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침신대가 진짜 살아나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답이 국가장학금이 아니라 복음이어야 한다. 충원율이 아니라 신학이어야 한다. 인증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답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이번 구조조정은 침신대의 마지막 챕터를 여는 서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