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부르짖는 자리에 교회는 없었다
교회가 침묵할 때, 누군가는 숟가락을 든다
며칠째 올림픽공원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 중심에는 2030 청년들이 있다. 누가 모으지 않았고, 누가 지휘하지 않았다.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황당함, 투표함이 옮겨지고 보관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꼈던 불안과 의혹, 그 가운데서 일어난 폭력과 부정함—이 모든 것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누군가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외침에 또 다른 누군가가 응답했다. 주동자도 없이, 지휘부도 없이, 그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며칠을 이어가고 있다.
그 현장 한쪽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또 어느 순간엔 함께 목소리를 보태면서 나는 한 가지 질문 앞에 멈춰 섰다. 이 나라와 이 시대를 향해 청년들이 이토록 절박하게 부르짖고 있을 때, 교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1. 국가의 위기 앞에서, 교회는 본래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가
성경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백성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정치적 해법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여러 날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느헤미야 1:4). 에스라는 백성의 죄와 나라의 혼란 앞에서 옷을 찢고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에스라 9:5-6). 다니엘은 바벨론의 통치 아래서도 자기 백성과 나라를 위해 금식하며 죄를 자백하는 기도를 올렸다(다니엘 9:3-4).
이들의 기도는 정치적 입장 표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백성의 죄를 자백하고,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회개와 중보의 자리였다. 교회가 국가적 위기 앞에서 본래 서야 할 자리는 바로 여기다—편을 들기 위함이 아니라, 무릎을 꿇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청년들이 시간대별로 모여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지도 못한 채 나라를 위해 부르짖고 있는 동안, 강단에서는 이 나라와 이 시대를 위한 기도가 들리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괜한 분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자기보호의 명분으로, 교회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를 비운 것이다. 그리고 비워진 자리는, 결코 비어있는 채로 남지 않는다.
2. 빈자리에 스며드는 자들
비어 있는 기도의 자리에는, 어느샌가 다른 무언가가 들어와 채운다. 실제로 처음 며칠 동안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재선거”를 외치던 청년 중심의 모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른 색깔의 무리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진실하게 무릎 꿇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곁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광의 열매”를 거둬가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와 그들이 인도하는 기도의 내용이 과연 성경적인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동원인지—순수한 마음으로 모인 청년들과 성도들은 그 구분을 하기 어렵다. 분별은 본래 교회가,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입술로 “주여”를 외친다고 해서, 기도회라는 이름을 건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가르치고 분별하도록 도와야 할 교회가 침묵하고 있으니, 순수한 청년들은 누가 진짜이고 누가 숟가락을 얹으러 온 자인지조차 구분할 자료를 갖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3. 회개하는 기성세대의 자리
이 글을 쓰는 나도 기성세대 목회자의 한 사람이다. 청년들이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도록, 그리고 그 외침이 변질되도록 방치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우리 세대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범을 보였다면, 청년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부르짖어야 하는지 배울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군가 슬그머니 끼어들어 자신의 세를 과시하려 할 때, “그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칠 수 있는 분별의 자리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현장에서 쓰레기를 줍고, 청년들과 성도들이 잘못된 자리에 앉지 않기를, 휩쓸리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하는 것. 그리고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을 향해, 더 이상 침묵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교회여, 이제는 강단에서 이 나라를 위해 무릎을 꿇으라. 청년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회개하며 부르짖으라. 그리고 그 진실한 부르짖음 곁에 슬쩍 끼어들어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 있다면, 분별하여 가르치고 막아서는 것 역시 교회의 사명임을 잊지 말라. “주여 주여” 하는 입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발걸음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