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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돌아가는 길, 말씀에서 멀어지는 길

2026 SBC 연례총회를 보며


지난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올랜도에서 열린 2026년 남침례교(SBC) 연례총회는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변곡점이 되었다. 멀리서 이 소식을 지켜보며, 나는 한국 교회, 특히 한국 침례교회가 가고 있는 방향과 정반대의 흐름을 보았다. 오늘은 그 풍경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1. 윌리 라이스 총회장 당선이 말해주는 것

플로리다 클리어워터 Calvary Church의 윌리 라이스(Willy Rice) 목사가 57.56%의 득표(5,217표)로 새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경쟁자였던 사우스캐롤라이나 Taylors First Baptist Church의 조시 파웰(Josh Powell) 목사는 42.16%(3,821표)를 얻었다.

라이스 목사는 출마 선언 당시, 지난 10년간 SBC가 “익숙한 표류(familiar drift)”를 경험했으며 이제는 교단이 교리적 명료성과 선교적 진지함으로 돌아가야 할 전략적 전환점에 서 있다고 밝혔다. 그는 총회 기간 설교에서 “옳은 교리를 확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사울이 그러했듯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는 사무엘상 15장의 정신을 상기시켰다. 그는 SBC가 “성공적인” 교단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보다 먼저 “신실한” 교단이 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SBC 내부에서 지난 10여 년간 누적된, “우리가 문화의 흐름(cultural riptide)에 휩쓸려 성경보다 세상의 기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왔다”는 자기비판적 공감대가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2. 몰러의 “진리와 일치(Truth and Unity)” 헌법 개정안

이번 총회의 핵심은 남침례신학대학원(Southern Seminary) 총장 알버트 몰러(Albert Mohler)가 발의한 “진리와 일치 개정안(Truth and Unity Amendment)”이었다. 이는 SBC 헌법 제3조 1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6번째 항목으로 추가하는 것이다: 협력 교회는 여성이 목사/장로/감독(pastor/elder/overseer)의 직과 기능—예컨대 모인 회중 앞에서 설교하는 일—을 맡도록 인정·임명·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하는 조항이다.

몰러는 이 표현이 1689 침례신앙고백서의 언어를 모델로 했다고 밝히며, 목사의 직과 기능이 그 신앙고백서 안에서 명확히 규정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투표 결과는 8,074표 중 6,028표(약 74.66%)가 찬성, 2,026표(약 25.09%)가 반대, 20표가 무효였다. 헌법 개정에는 2년 연속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년 인디애나폴리스 총회에서 2차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3. 결의안 9: “목사/장로/감독의 직과 기능에 관하여”

헌법 개정안과 별도로, 결의위원회는 “목사/장로/감독의 직과 기능에 관한 결의안(Resolution 9)”을 상정했고, 채택되었다. 이 결의안은 구속력 없는 메신저들의 의견 표명이지만, 그 내용은 분명하다.

  • 성경은 목사·장로·감독이라는 용어로 동일한 하나의 직제를 가리킨다.
  • 그 직제는 성경이 요구하는 자격을 갖춘 남성으로 제한된다.
  • 신약은 목회 직과 회중에 대한 목회적 감독의 기능을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제시한다.
  • 교회들은 “목사”, “장로”, “감독” 등의 호칭을 그 직의 책임과 기능과 분리하여 사용함으로써,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BF&M 2000)가 규정한 목회 직제에 대한 이해를 모호하게 하거나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명료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 동시에, 여성들이 남침례교 사역 전반에서 감당해온 “대체할 수 없는 섬김”—양육, 전도, 선교, 사역—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성경적으로 신실한 방식으로 여성을 계속 세우고 활용할 것을 권면한다.

결의위원회는 이 결의안을 상정한 이유를, “일부 남침례 교회들 안에서 ‘목사’, ‘장로’, ‘감독’이라는 호칭이 실제로 그 직의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 역할에, 또는 교단이 성경에 대해 합의한 이해와 어긋나는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혼란이 발생해왔다”는 데서 찾았다. 위원장 헌터 베이커는 이 문제가 “교회 권위자들의 해석”이 아니라 “성경에 의해 이미 정리되어 있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4. 이것이 SBC에 던지는 의미

세 가지 사건—총회장 선거, 헌법 개정안, 결의안—은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SBC의 풀뿌리, 곧 8천 명이 넘는 메신저들의 다수가 “우리 교단이 세상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성경적 직제 이해를 흐리거나 양보해온 지점들이 있었고, 이제는 그것을 다시 성경의 언어로, 신앙고백의 언어로 명료하게 되짚어야 한다”는 데에 압도적으로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74.66%, 57.56%라는 숫자는 단순한 정치적 세력 교체가 아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직제와 자격을 우리가 더 이상 모호하게 두지 않겠다”는 개교회들의 누적된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SBC 안에 다시 한번 부흥의 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교회의 부흥은 늘 “말씀으로 돌아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5. 거꾸로 가는 한국 교회, 한국 침례교회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한국 교회, 그리고 좁게는 한국 침례교회는 지금 정반대의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성을 “목사”로 세우는 문제, 직제와 기능이 분리된 채 남발되는 “호칭 장로”—실제로는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장로의 직무를 감당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존경의 호칭으로만 “장로”라는 명칭이 쓰이는 현실—은 SBC 메신저들이 결의안 9에서 정확히 우려했던 그 “혼란”의 한국적 버전이다. 직(office)과 호칭(title)과 기능(function)이 분리되는 순간, 우리는 성경이 그려놓은 직제의 경계선을 스스로 지워버리게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흐름의 배후에 자리한 사고방식이다. “전도만 된다면”, 더 정확히는 “사람만 모인다면” 무엇이든 도입하겠다는 태도—이것은 결국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가 남긴 가장 깊은 유산이다.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이유로, 성경이 가르치는 직제와 질서조차도 협상 가능한 변수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는 시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시며, 교회의 헌법은 통계가 아니라 성경이다.

SBC의 이번 총회가 보여준 것은 결국 단순한 진리다: 한 교단이, 한 교회가 다시 살아나고자 한다면, 그 길은 시대의 요구에 더 빠르게 응답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성경이 이미 말해온 것으로 더 정직하게, 더 단순하게 돌아가는 데 있다는 것. 한국 교회가, 그리고 한국 침례교회가 이 진리 앞에 서기를, 그리하여 세속화의 조류를 거슬러 다시 말씀 위에 서는 회중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